2015년 7월 31일 금요일

네이버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http://blog.naver.com/paleosalon

안녕하세요. 박진영의 개인 블로그가 네이버 블로그로 이사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5년 6월 15일 월요일

트리케라톱스는 코뿔소처럼 돌진할 수 있었을까?


Fig 1. 티라노사우루스를 향해 돌진하는 트리케라톱스.
머릿속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과연 실제로도 그랬을까?
(이미지 출처 : fineartamerica.com)

           트리케라톱스(Triceratops)는 드럼통 같은 몸매, 뒷통수에 있는 부채처럼 펼쳐진 얇은 뼈판(프릴frill이라 부른다), 그리고 눈과 코 위에 솟아난 세 뿔 덕분에 다른 공룡들과 쉽게 구분된다. 특히 머리에 있는 뿔 때문에 트리케라톱스는 공룡시대의 코뿔소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영화나 만화 속의 트리케라톱스는 고개를 숙인 채 영원한 맞수인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를 향하여 돌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Fig 2. 로버트 바커 박사의 트리케라톱스 복원도.
코뿔소와 말과 같은 현생동물들의 질주하는 모습을 많이 참고했다.
(이미지 출처 : gspauldino.com)

           한때 고생물학자들은 트리케라톱스가 코뿔소처럼 돌진할 수 있었다고 믿었는데, 이것은 미국 휴스턴자연과학박물관(Houston Museum of Natural Science)의 로버트 바커(Robert T. Bakker) 박사의 영향이 컸다. 1986년에 발표된 그의 논문에 따르면 트리케라톱스의 상완골(위팔뼈)과 견갑골(어깨뼈)이 만나는 관절 부위는 악어나 도마뱀보다는 질주가 가능한 말이나 코뿔소와 유사했는데, 이러한 해부학적 특징 때문에 바커 박사는 트리케라톱스의 앞다리가 말이나 코뿔소처럼 밑으로 곧게 뻗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다리 포즈가 말과 코뿔소와 닮았기 때문에 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 또한 말과 코뿔소를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시에 바커 박사가 추정한 말처럼 달리는 트리케라톱스의 속도는 무려 시속 45 km, 재빠른 우사인 볼트도 부러워할 만한 스피드였다.

Fig 3. 케라톱시페스 골덴엔시스(Ceratopsipes goldenensis). 트리케라톱스의 흔적으로 추정.
발자국 자체가 보존된 것이 아니라 발자국의 속을 채우고 있던 퇴적물들이 보존된 것이다.
ⓒJohn Kercher

Fig 4. 미국에서 발견된 다양한 뿔공룡의 발자국. 앞발자국간의 폭이 뒷발자국만큼이나 넓다
(이미지 출처 : Dinosaur Tracks, Richard A. "Tony" Thulborn, 1990)


           하지만 미국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 때문에 트리케라톱스의 포즈는 바뀌어야 했다. 1990년대 초, 미국 콜로라도대학(University of Colorado)의 마틴 록클리(Martin G. Lockley) 교수와 연구팀은 뿔공룡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보행열 화석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발견했다. 그들은 이 보행열 화석에서 앞발에 해당하는 발자국들이 뒷발자국만큼이나 좌우 폭이 넓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상대적으로 어깨가 좁은 뿔공룡들이 좌우 폭이 넓은 앞발자국을 내려면 앞다리가 벌어져야만 했다. 콜로라도주의 발자국 화석과 뿔공룡의 뼈화석을 토대로 다시 복원된 트리케라톱스의 앞다리는 놀랍게도 약간 쩍벌형의 자세였다. 결국 바커 박사의 주장과 달리 트리케라톱스는 말이나 코뿔소와는 다른 앞다리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 쩍벌형의 앞다리를 가진 트리케라톱스는 말이나 코뿔소처럼 ‘달그닥 달그닥’거리며 질주할 수가 없었다. 대신 코끼리처럼 앞다리와 뒷다리를 차례로 움직이며 조깅하듯이 뛰어야했다. 이를 토대로 공룡 발자국 화석 전문가인 리처드 툴번(Richard A. Thulborn) 박사가 추정한 트리케라톱스의 뛰는 속도는 약 시속 26 km였다. 1980년대에 바커 박사가 추정한 것 만큼 재빠르지 않아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뛰지 못하는 공룡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트리케라톱스는 그래도 공룡 중에서 ‘잘 뛸 수 있는’ 녀석이었다.

Fig 5. 미국 로스앤젤레스자연사박물관(Los Angeles Natural History Museum)의 트리케라톱스.
가장 최신의 연구자료를 토대로 복원되었다. ⓒAllie_Caulfield

           하지만 재아무리 ‘잘 뛸 수 있는’ 공룡이라 할지라도 오늘날의 고생물학자들은 트리케라톱스가 코뿔소처럼 적을 향해 돌진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이 크고 무거운 포식자에게 돌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최대 9톤까지 나가는 거구다. 트리케라톱스티라노사우루스를 들이받았을 때, 티라노사우루스가 무게중심을 잃고 트리케라톱스 쪽으로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트리케라톱스의 잘생긴 얼굴은 묵사발이 될지도 모른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다가 제명에 못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티라노사우루스를 향해 뿔을 겨누고 질주하는 트리케라톱스의 모습은 영화나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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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4일 일요일

티라노사우루스는 눈 뜬 장님이었을까?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녀석은 움직이는 물체만 볼 수 있습니다.
─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 1993)> 중에서

Fig 1. 섬광신호기에 반응하는 영화 속 티라노사우루스.
(이미지 출처 : www.jurassicworlduniverse.com)

          영화 <쥬라기 공원>의 히어로 그랜트 박사는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가 마치 개구리처럼 움직이는 사물에만 반응을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당시 영화의 과학 자문위원을 맡았던 미국 로키박물관(Museum of the Rockies)의 큐레이터 존 호너(John R. Horner)박사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시킨 것이었다. 길이가 약 1.5 m 되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에는 지름이 12 cm 정도 되는 눈알 두 개가 들어가 있었는데, 호너 박사는 야구공만한 티라노사우루스의 눈이 머리 크기에 비해 너무 작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작은 눈을 가졌기 때문에 시력이 그리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Fig 2. 육식공룡 알로사우루스의 복원된 머리. 머리의 양옆이 납작해서 눈이 옆을 향한다.
(이미지 출처 : http://ix.cs.uoregon.edu/~kent/paleontology/binocularVision/)


Fig 3. 육식공룡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의 복원된 머리. 알로사우루스와 마찬가지로 머리가 납작하다.
(이미지 출처 : http://ix.cs.uoregon.edu/~kent/paleontology/binocularVision/)

          하지만 2006년에 공개된 미국 오리건대학(University of Oregon)의 켄트 스티븐스(Kent A. Stevens) 교수의 연구결과는 호너 박사의 주장과 정 반대로 나왔다. 스티븐스 교수는 티라노사우루스를 포함해 여러 공룡의 머리를 복원해서 두 눈의 시야가 얼마나 겹치는지에 대해 실험을 했다. 눈의 시야는 많이 겹치면 겹칠수록 거리판단 능력과 공간지각 능력이 향상되며, 포식동물은 교차시야가 넓을수록 더 활동적으로 사냥하는 경우가 많다. 실험결과, 알로사우루스(Allosaurus) (Fig 2) 그리고 카르카로돈토사우루스(Carcharodontosaurus) (Fig 3)와 같은 일반적인 카르노사우루스류의 경우 양 눈의 교차시야가 약 20도 정도였다.

FIg 4.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표본을 참고해 복원한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
다른 육식공룡들과 달리 머리 뒷부분이 넓어서 눈이 앞을 향한다.
(이미지 출처 : http://ix.cs.uoregon.edu/~kent/paleontology/binocularVision/)

          이들과 달리 티라노사우루스는 최대 55도의 교차시야를 보였는데(Fig 4), 이는 티라노사우루스가 다른 공룡들보다 눈이 앞을 향하며 사물을 더 입체적으로 보았음을 의미했다. 실제로 티라노사우루스의 머리 앞에 서보면 마치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처럼 눈이 똑바로 앞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더 나아가 스티븐스 교수는 티라노사우루스가 그 어떤 육상 척추동물 보다 큰 눈을 가졌다고 언급했다. 물론 호너 박사의 의견처럼 몸길이 13 m나 되는 거대한 몸집에 붙어 있는 야구공만한 눈알은 작다. 하지만 오늘날 살아있는 척추동물 중 가장 큰 눈을 가진 대왕고래(Balaenoptera musculus)가 지름 15 cm 정도 되는 눈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티라노사우루스는 상당히 큰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Fig 5. 오늘날의 범람원 환경. 6,600만 년 전 티라노사우루스가 살았던 동네와 비슷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www.geologyclass.org)

          스티븐스 교수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시력이 사람보다 약 13배 더 좋았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정도면 오늘날의 독수리보다도 좋은 시력이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시력이 뛰어났던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살았던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나무가 우거진 숲이나 산속이 아닌 드넓은 범람원 지역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FIg 5). 어쩌면 앞을 향하는 거대한 망원렌즈 같은 눈을 이용해 티라노사우루스는 탁 트인 평원에서 먹잇감을 찾아다녔을지도 모른다.

Fig 6.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 인형을 보고 놀라는 아이들. 실제 공룡이 아닌 게 다행이다.
(이미지 출처 : www.cornwalllife.co.uk)

          이 정도 시력이면 완벽한 사냥꾼의 눈이 아닐까? 그러니 티라노사우루스를 만나게 되면 절대로 영화에서처럼 가만히 있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닭에서 치킨너겟이 된 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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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30일 월요일

'심판의 날'을 심판하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오파비니아』과학강연 청강)

Fig. 1. 6월 13일,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진행된 『오파비니아』과학강연.
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이항재 연구원님의 『대멸종』강연이 있었다.

 6월 13일(금요일), 필자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오파비니아』과학강연을 청강했다. 오파비니아』과학강연은 출판사『뿌리와 이파리』의 『오파비니아』책 시리즈에 대한 경연으로 한달에 한권씩 선정하여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행사이다. 이날은 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의 이항재 연구원님께서 오셨는데, 『오파비니아』시리즈 중 3번째 책인 『대멸종(When life nearly died : the greatest mass extinction of all time, 2005)』에 대한 강연을 하셨다.(Fig. 1).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7년전에 『대멸종』책을 구입했다. 큰 마음을 먹고 구입한 책이지만.. 책이 너무 두껍고 그림도 별로 없어서.. 힘들게 읽다가 결국은 그만 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지금도 북마크가 꽂혀있는 상태로 필자의 책장에서 끝없는 동면을 취하고 있다. 결국 책을 직접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번 강연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책의 내용을 끝까지 알수가 있었다.

 『대멸종』은 고생대 페름기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의 경계를 긋는 대멸종 사건을 다룬다. P-Tr 대멸종 사건(Permian–Triassic extinction event)라고도 불리며, 이에 대해서는 고생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해양생물의  96 %, 육상생물의 70 %가 절멸한 엄청난 사건으로, 가장 많은 킬(kill) 수를 자랑하는 멸종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사건에서 살아남아 오늘까지 잘 살고있는 분류군도 있지만, 고생대를 대표하던 삼엽충류(Trilobita), 바다전갈류(Eurypterida), 해뇌류(Blastoidea, 성게류에 포함되는 분류군), 그리고 자어류(Acanthodii)가 이때 완전히 멸종해버리고 말았다.

Fig. 2. 시베리아 범람현무암지대(Siberian Traps). 페름기 말에 방출된 엄청난 양의
마그마에 의해 형성되었다. 두께는 최대 3 km. P-Tr 대멸종 사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 수많은 생물들이 페름기 말에 멸종해버린 것일까? 운석충돌, 범람현무암지대(flood basalt)의 형성(Fig. 2), 화산활동으로 인한 대량의 메탄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 가스유출, 산소결핍현상과 황화수소의 대방출 등이 멸종사건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중 당시 시베리아 지역에 넓게 형성된 범람현무암지대(Fig. 2)가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멸종원인이긴 하지만, 사실 이 이유 하나만으로 전지구적인 멸종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아마도 오랜기간동안 다양한 환경적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엉키면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P-Tr 대멸종 사건은 정말로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던 이벤트였을까? 그랬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P-Tr 대멸종 사건은 약 백만년에 걸쳐 서서히 점진적으로 일어났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당시의 생물들은 그다지 큰 변화를 감지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수십종이 사라지는 오늘날의 멸종현상과 비교하면 P-Tr 대멸종 사건은 (당시에 멸종한 종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로 길고 매우 지루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Fig. 3.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이노소어 레볼루션』의 한 장면. 페름기 말의 동물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장면이 연출되지만 현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드라마틱하고 임펙트가 강한 것을 선호한다. 듣거나 보는 입장에선 이러한 것들이 더 흥미롭고 재미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구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P-Tr 대멸종 사건을 마치 영화『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 '심판의 날'처럼 묘사한다(Fig. 3). 머나먼 미래에는 오늘날의 멸종사건이 어떻게 묘사될지.. 궁금하다.

Fig. 4. 늦은 밤, 대전으로 돌아가시는 이항재 연구원님.
노란 난방이 잘 어울리는 남자입니다.

 그나저나..
 이항재 연구원님, 고생하셨습니다^^




너는 그저 미지근한 공룡... 『골디락스 가설』

Fig. 1. 유타대학의 스콧 샘슨 박사. 그는 자신의 저서 『공룡 오디세어』를 통해
공룡의 체온체계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소개했다. (From web.poptower.com)

 공룡을 내온성으로 보자니 서식환경이 모자라고, 외온성으로 보자니 신체구조가 너무 특이하다. 그럼 이들은 어떤 체온체계를 가졌을까? 2009년, 유타대학(University of Utah)의 스콧 샘슨(Scott Sampson) 박사(Fig. 1)는 자신의 저서 『공룡 오디세어(Dinosaur Odyssey)』를 통해 공룡의 체온체계에 대한 새로운 가설을 소개했다. 공룡(조류 제외)은 내온성도 외온성도 아닌 그 중간에 해당하는 중온성(mesotherm)이었다는 것, 바로 "골디락스 가설(Goldilocks hypothesis)"이다.

Fig. 2. 영국의 전래동화『골디락스와 곰 세마리』에 등장하는 금발머리 소녀 골디락스.
(From addisonmoore.tumblr.com)

 골디락스(Goldilocks)는 영국의 전래동화『골디락스와 곰 세마리(Goldilocks And The Three Bears)』에 등장하는 금발머리 소녀의 이름이다(Fig. 2). 동화 속 골디락스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스프를 먹고,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푹신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의자에 앉으며,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딱 적당한" 침대에 누워서 취침을 한다. 항상 "딱 적당한" 중간을 택하는 소녀 골디락스에게서 샘슨 박사는 이 가설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Fig. 3. 다양한 공룡 두개골. 육식공룡, 초식공룡 모두 뼈로 된 볏구조를 가진다.
아마도 성적 과시용 구조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From blogs.scientificamerican.com)

 비록 외온성과 내온성의 중간에 해당하는 체온체계지만, 중온성은 외온성과 내온성, 두 전략의 최선을 제공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단 중온성은 상대적으로 몸의 유지비용이 낮추면서 동시에 효율을 높여 성장과 생산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늘릴 수가 있다. 이는 공룡류에게서 볼 수 있는 빠른 성장률과 다양한 성적 과시용 구조물들(Fig. 3)을 설명할 수가 있다. 또한 중온성은 몸 크기의 증가에 따른 열발산 문제도 개선시켜주는데, 내적 열생산의 필요성을 최소화시킴으로써 먹이섭취량을 줄이고, 더 나아가 좁은 면적 내에서 높은 개체군밀도를 유지시킬 수가 있다.

 그렇치만 정말 중온성이란 것이 실존할 수 있는 것일가? 사실 현존하는 생물 중 중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내온성인 조류와 포유류의 경우, 과거 진화과정 중 한번은 외온성과 내온성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물질대사를 가졌을 것이다. 공룡은 분류상 외온성인 악어와 내온성인 조류 사이에 해당하니 중온성이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Fig. 4. 온몸이 깃털로 뒤덮힌 몸집이 작은 코엘루로사우루스류. ⓒ keesey

 하지만 과연 모든 공룡이 중온성이었을까? 샘슨 박사는 적어도 코엘루로사우루스류(Coelurosauria)는 내온성 범위에 진입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코엘루로사우루스류에게서 발견되는 보온용 깃털의 존재(Fig. 4), 그리고 육식성에서 초식성(또는 잡식성)으로의 식성변화는 증가한 에너지 필요량를 충족시켜기 위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대사율이 높아지면서 육식으로는 몸을 유지하기가 어려우므로 몸체를 축소시켰을 것이며, 많은 양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식성을 초식 또는 잡식성으로 전환시켰을 것이다.

Fig. 5. 붉은바다거북(Caretta caretta)은 완전한 해양성 동물이다. 파충류 중 거북류, 기룡류,
인룡류, 악어류 모두 해양성 동물이 존재하지만 공룡류에서는 해양성 동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골디락스 가설"은 "왜 중생대 기간동안 해양성 공룡이 없었을까?"에 대한 의문점을 풀어주는 가장 합당한 가설이기도 하다. 물은 뛰어난 열전도체이기 때문에 체열을 빨리 빼앗는다. 공룡류가 충분하게 열을 발생시키기 못하는 중온성이었기 때문에 해양에서의 삶이 불가능했다 것이 샘슨 박사의 주장이다.

 물론 모든 학자가 샘슨 박사의 가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공룡의 체온체계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것이 "골디락스 가설"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가까운 미래에는 이를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더 새롭고 더 합당한 가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공룡의 체온체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공룡이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까지 정말로 특이한 동물들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 현재 "골디락스 가설"은 비공식 명칭이며, 샘슨 박사의 저서에서만 소개되었을 뿐 학술논문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이 없다. 그의 저서 『공룡 오디세어』가 출판된지도 벌써 5년... 필자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골디락스 가설"에 대한 논문을 인내심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여기 따끈따끈한 공룡 한마리 추가요~! 공룡은 정말 내온성이었을까?


 생물의 체온체계는 체온의 조절방식과 유지의 여부에 따라 분류가 된다. 그럼 멸종한 공룡들은 어떠했을까? 현존하는 공룡종류인 조류와 공룡의 살아있는 사촌인 악어류를 참조할 수 있겠다만, 이 두 분류군만을 가지고는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악어류는 체온이 외부에 의해 변화하는 외온성이며, 조류는 몸의 내적인 열원에 의해 조절이 되는 내온성이기 때문이다.

Fig. 1. 후쿠이현립공룡박물관의 데이노니쿠스 레플리카.
공룡 내온설이 힘을 얻게 된 것은 데이노니쿠스의 발견 덕분이다.
ⓒ Jin-Young Park

 현재 많은 학자들은 공룡류(조류 제외)가 내온성 물질대사를 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는 1960년대 이후, 예일대학(Yale University) 존 오스트롬(John Ostrom, 1928~2005) 교수에 의해 기재된 데이노니쿠스 안티르로푸스(Deinonychus antirrhopus)(Fig. 1)의 영향이 크다(Martin, 2006). 존 오스트롬 교수와 데이노니쿠스 이야기는 워낙 잘 알려진 에피소드니 여기서는 생략을 하겠다. 공룡의 내온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공룡들의 상대적인 뇌크기(당시에 살았던 동물들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 포식자-피식자 비율(피식자인 초식공룡의 개체수가 포식자인 육식공룡의 개체수보다 월등히 높다), 그리고 고위도 지역에서 발견되는 공룡화석(파키리노사우루스가 대표적)(Fig. 2) 등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바침하고 있다(Sampson, 2009).

Fig. 2. 벨기에왕립자연사박물관의 파키리노사우루스 두개골.
고위도까지 진출한 대표적인 공룡류이다. ⓒ Jin-Young Park

 하지만 어느 과학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모든 학자들이 한 가지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회장이 항상 시끄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조류를 제외한 공룡류를 오히려 악어류와 유사한 동물로 보는 일부 학자들은 공룡이 외온성이라 한다. 이들 내온성 반대파에 의하면 멸종한 생태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뇌크기나 포식자-피식자 비율은 공룡의 체온체계를 추정하는데 있어서 크게 의미가 없다고 한다. 또한 중생대 당시의 극지방에는 만년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파충류인 공룡들이 고위도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Sampson, 2009).

Fig. 3. 공룡뼈화석의 절단면에서 관찰되는 하버스관 구조.
이러한 구조는 공룡류뿐만 아니라 대형 포유류에게서도 관찰된다.
(From www.hmag.gla.ac.uk)

 뼈화석의 겉 껍데기만으로는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자 몇몇 학자들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해 공룡뼈의 미세구조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충남대학교 김정균 선생님이 유일하게 공룡뼈 미세구조를 연구하신다.) 공룡뼈의 절단면에는 뼈의 세로측을 따라 뻗은 좁은 관인 하버스관(Haversian canal)이 발달해있는데(Fig. 3), 이는 큰 포유류의 뼈에서도 나타나는 구조이다. 그래서 공룡의 내온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 하버스관을 결정적인 증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하버스관은 특정 종류의 악어와 거북을 비롯한 외온성 동물에게서도 나타나며, 몇몇 소형 내온성 동물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기 때문에 공룡 내온설을 100 % 뒷받침해주지는 못한다.

Fig. 4. 패롯자연과학박물관의 알라모사우루스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은 거대한 몸집 때문에 내온성일 가능성이 적다.

 사실 공룡류가 정말로 내온성이었다면 이들의 엄청난 먹이섭취량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사자(Panthera leo) 한종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대륙규모의 지리적 범위가 필요하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Tyrannosaurus rex) 한마리의 몸무게가 최소한 사자 25마리의 무게와 맞먹었을 것을 생각해보면, 내온성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한종을 수용하기 위해선 25개의 대륙 면적이 필요하다(Sampson, 2009).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보다 더 거대한 용각류(Sauropod)(Fig. 4)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거대한 내온성 몸체는 몸의 부피에 비해 적은 표면적을 가지기 때문에 과열에 상당히 취약해진다. (그래서 최근에는 거대항온성(gigantothermy)이 빛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소형공룡류의 체온체계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현재로써는 공룡이 조류나 포유류처럼 에너지 비율이 높은 내온성이었음을 증명하기에는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다. 하지만 이들의 신체조건들을 보면 분명히 활동적인 동물이었음은 확실하다. 그럼 공룡의 체온체계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은 없을까? 2009년, 유타대학(University of Utah)의 스콧 샘슨(Scott Sampson) 박사는 자신의 저서 『공룡 오디세어(Dinosaur Odyssey)』를 통해 새로운 가설을 소개했는데, 이는 다음 게시물을 통해 소개를 하겠다.


참고문헌

Martin, A. J. 2006.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Dinosaurs (2nd edition). Blackwell Publishing. p. 560.

Sampson, S. D. 2009. Dinosaur Odyssey: Fossil Threads in the Web of Lif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 352.




2014년 6월 7일 토요일

냉정한 저녀석... 과연 냉혈(cold-blooded)일까? 동물의 체온 체계

Fig. 1. 책『파충류처럼 냉정하고 포유류처럼 긍정하라(2007)』의 표지.
(From: www.amazon.com) 

 필자의 책장에는 『파충류처럼 냉정하고 포유류처럼 긍정하라(The Nature of Leadership, 2007)』라는 제목의 자기개발서가 꽂혀있다(Fig. 1). 이 책에서는 어떠한 문제에 대한 상황판단 시, "냉혈동물인 파충류처럼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어떠한 판단을 할 때에는 개관적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정말 이 책의 표현처럼 파충류는 "냉혈동물"일까?

Fig. 2. 동면중인 미국흑곰(Ursus americanus). 체온을 내적으로 조절하는 내온성 동물이지만,
동면기에는 체온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변온성 동물이기도 하다. ⓒ North American Bear Center

 책의 내용을 떠나서, 일반적으로 냉정한 사람을 "냉혈동물"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냉혈동물"이란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냉혈성(cold-blooded)"은 체온이 외부환경에 의해 오르락 내리락하는 체온 체계를 의미하는데, 외부의 기온이 높은 곳에서는 체온 또한 높게 상승하기 때문에 '차가운 피'를 뜻하는 "냉혈(冷血)"이란 단어은 잘못되었다 할수 있다. 정확한 표현은 변온성(Poikilotherm). 이와 반대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체온 체계를 항온성(Homeotherm)이라 한다("온혈성"은 잘못된 표현). 더 나아가, 동물의 체온 체계는 체온이 조절되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 내부의 열원을 통해 체온조절을 하는 내온성(Endothermic), 그리고 외부의 열원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는 외온성(Ectothermic)이 존재한다(Sampson, 2009). 즉, 소화를 통해 열에너지를 생산하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우리 인간(Homo sapiens)은 내온성임과 동시에 항온성이다. 반면, 같은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동면(冬眠)을 하는 미국흑곰(Ursus americanus)은 체온을 내적으로 조절하지만, 동면을 하는 동안 체온에 큰 변화가 있으므로 내온성임과 동시에 변온성이다(Fig. 2).

Fig. 3. 포유류 몸체의 질량에 따른 신진대사율의 변화. 체구가 작은 동물일수록 열손실이 쉬우며,
손실된 열을 보안하기 위해 신진대사가 촉진될 수 밖에 없다. (From: dspace.jorum.ac.uk)

 체온 체계는 몸체의 크기와도 연관성이 크다. 덩치가 작은 동물들은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크다보니 체내의 열을 빠른 속도로 잃는다. 반면, 몸집이 거대한 동물들은 몸의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작다보니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에 있어서 더욱 유리하다. 따뜻한 물이 담겨있는 머그잔과 욕조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작은 동물은 체내의 열을 빨리 잃기 때문에 손실된 에너지를 빠른속도로 보안해줘야만 한다. 그래서 작은 동물들은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인 형태를 보이며, 더 나아가 온몸이 털로 덮히거나 몸을 떠는 행위를 보인다(Sampson, 2009). 이와 반대로 몸집이 큰 동물들은 열을 발산할 표면적이 적다보니 몸이 과열될 수도 있다는 단점을 지닌다. 그래서 일부 대형동물들은 몸의 표면적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넓은 귀면적을 가진 아프리카코끼리(Loxodonta africana)이다.

Fig. 4. 장수거북(Dermochelys coriacea)은 외온성임과 동시에 변온성이지만,
큰 몸집과 상대적으로 적은 표면적 때문에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 항온성 특징을 보인다.
(From: www.wired.com)

 기본적으로 변온성이지만 거대해진 몸집 때문에 본의 아니게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큰 몸집 덕에 체온을 유지하는 것을 거대항온성(Gigantothermy)이라 하는데(Sampson, 2009), 대표적인 것이 장수거북(Dermochelys coriacea)이다(Fig. 4). 앞지느러미의 길이만 해도 최대 2.7 m까지 성장할 수 있는 장수거북은 지상최대의 파충류 중 하나이다. 본래 장수거북의 새끼는 외부로부터 체온을 조절하는 외온성, 체온의 변화가 있는 변온성이지만, 거대한 성체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몸체의 표면적이 작아지게되어 항온성의 특징을 보이게 된다.

Fig. 5. 열카메라를 통해 촬영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갈라파고스바다이구아나
(Amblyrhynchus cristatus). 몸집이 작은 변온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열원에
의해 높은 체온을 보이고 있다. (From: www.panoramio.com)

 그렇다면 몸집이 작은 외온성+변온성 동물들은 어떨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냉혈동물", 즉 일반적인 파충류들이 바로 이런 체온 체계에 속한다. (ex. 도마뱀, 뱀) 이들은 내부의 열원으로부터 열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내온성 동물보다 표면적 크기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Sampson, 2009). 이는 손실된 열에너지를 내온성 동물만큼 빠른 속도로 보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집이 작은 외온성+변온성 동물들은 몸체의 표면적을 많이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직접 받거나, 햇빛에 달궈진 암석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체온 체계는 적당한 시간과 장소가 주어지면 항온성 동물보다 더 높게 체온을 상승시킬 수가 있는데, 일광욕시 체온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바다이구아나(Amblyrhynchus cristatus)가 대표적이다(Fig. 5). 결국, 우리들이 흔히 알고있는 "냉혈동물"은 (상황에 따라) "냉혈"이 아닌 것이다.

Fig. 6. 아메리카엘리게이터(Alligator mississippiensis)의 밝은 미소.

 "냉혈동물"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 이것이 필자가 오늘 전달하고픈 말이다. 이러한 말표현 때문에 많은 동물들의 이미지가 왜곡되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시간이 된다면 애완용 뱀의 체온을 느껴보기 바란다. (차가운 곳에 있지만 않았다면) 뱀이 차갑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일반인들에게도 뱀의 눈빛과 악어의 미소(Fig. 6)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Sampson, S. D. 2009. Dinosaur Odyssey: Fossil Threads in the Web of Lif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 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