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9일 금요일

기어가는 삼엽충 이야기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강연 청강)

 필자의 정신은 초등학생때 이후로 그리 크게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이 많고 페이지 수가 적은 책을 선호한다. 그래서일까, 고생물학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뿌리와 이파리』의 『오파비니아』시리즈(Fig. 1)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오파비니아』시리즈가 모두 좋은 책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며, 읽어볼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다. 2007년, 필자가 학부생었을 시기에 시리즈 중『대멸종(When life nearly died : the greatest mass extinction of all time, 2005)』이란 책을 구입한 적이 있다. 그때 당시만해도 마음을 크게 먹고 구입한 책이었지만.. 너무 두꺼워서 일까.. 아니면 그림이 별로 없어서일까.. 책의 내용보다는 졸음과의 사투만이 필자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결국 필자는 그 책의 끝을 보지 못했으며, 7년이 지난 지금도 북마크가 꽂혀있는 상태로 책장을 장식하고 있다.

Fig. 1. 출판사『뿌리와 이파리』의 『오파비니아』시리즈.
필자는『대멸종』편을 읽다가 졸려 죽을뻔한 적이 있다.
하지만 좋은 내용의 책임에는 틀림없다.

 오랜 시간동안 『오파비니아』시리즈에 대해 거의 잊고 살던 필자는 올해 초,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한달에 한번꼴로『오파비니아』시리즈에 대한 과학강연이 있을 것이란 소식을 접하고는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꺼운 책보다는 두시간짜리 강연을 더 선호하다보니..) 이런저런 일때문에 아쉽게도 필자는 이전의 강연들은 모두 놓쳤지만, 이번 달에는 겹치는 스케줄이 없다보니『오파비니아』과학강연 중 4번째인 『삼엽충』을 청강할 수 있었다.

Fig. 2. 국립중앙과학관의 김동희 박사님(우)과
이번 행사의 진행을 맡으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백두성 학예사님(좌).

 이번 『삼엽충』강연을 하신 분은 국립중앙과학관의 김동희 박사님이시다(Fig. 2). 박사님은 삼엽충으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으며, 유명한『DK(Dorling Kindersley)』시리즈의 『지구(Earth, 2006)』와『자연사(Natural History, 2012)』의 한글판 번역을 맡으셨고, 대표 저서로는 『화석이 말을 한다면(2011)』과『공룡화석은 왜 우리나라에서 많이 발견될까요(2010)』가 있다. 이번 강의에서 박사님은 삼엽충에 대한 기본 지식, 그리고 삼엽충 연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물론 필자는 이것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다보니 깊이있는 내용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삼엽충과 관련해서 필자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도 소개해 주셔서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Fig. 3. 3가지 생흔화석을 이용한 삼엽충의 행동해석
(from the『A Guide to the Orders of Trilobites』website).

박사님의 강연내용 중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은 바로 생흔화석(ichnofossil)을 통한 삼엽충의 행동해석에 관한 것이었다(Fig. 3). 삼엽충의 생흔화석 종류는 루소피쿠스(Rusophycus), 크루지아나(Cruziana), 디플리크니테스(Diplichnites), 크게 3가지가 있다.

Fig. 4. 루소피쿠스(Rusophycus), 삼엽충의 생흔화석.
삼엽충이 쉬어간 흔적으로 해석된다.
(From the『A Guide to the Orders of Trilobites』website)

 루소피쿠스는 삼엽충이 퇴적물 속에서 휴식을 취할 때 남겨진 생흔적으로 해석된다(Garlock and Isaacson, 1977)(Fig. 4). 삼엽충이 가만히 있을때 남겨진 흔적이다보니 휴식을 취하던 삼엽충의 테두리가 보존되어 있다. (루소피쿠스 생흔화석속은 캄브리아기부터 트라이아스기까지 나타나는데, 삼엽충이 아닌 다른 절지동물들도 이러한 루소피쿠스 흔적을 남겼을 것으로 여겨진다.)

Fig. 5. 크루지아나(Cruziana), 삼엽충 생흔화석.
중앙의 선을 중심으로 다리의 흔적이 좌우대칭을 이루는 기어간 흔적.
(From the『A Guide to the Orders of Trilobites』website)

 크루지아나는 생물이 얕은 퇴적물 속을 파헤치면서 남겨진 흔적으로 해석되며, 이는 루소피쿠스 생흔적과 함께 발견되기 때문에 삼엽충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Baldwin, 1977)(Fig. 5). 간혹 구불구불한 보행열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삼엽충이 퇴적물을 파헤치면서 먹이를 찾거나 걸러먹는 행위를 지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Fig. 6. 디플리크니테스(Diplichnites), 삼엽충 생흔화석.
(From the『A Guide to the Orders of Trilobites』website)

 디플리크니테스는 한쌍의 나란한 보행열로 이루어진 생흔화석속으로(Fig. 6), 퇴적물 위를 사뿐사뿐 걸어다닌 생물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를 남긴 생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e.g., Dawson, 1862; Briggs et al., 1979), 루소피쿠스와 마찬가지로 여러 생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삼엽충 또한 디플리크니테스를 남긴 생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을 남긴 삼엽충은 짝을 찾으러가거나 더 좋은 식당을 찾으러 가는 중이지 않았을까.

Fig. 7. 우리나라 오르도비스기 정선석회암의 삼엽충 화석.
왜 필자는 야외조사시 항상 파편만을 찾는 걸까..

 박물관에서 강연을 들을 경우, 간혹 박물관 수장고의 화석표본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동희 박사님의 강연이 끝나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백두성 학예사님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삼엽충 화석을 직접 꺼내서 보여주셨다(Fig. 7). 동글동글한 머리와 꼬리가 귀여운 것 같다. 화석이야말로 자연이 만든 최고의 아트가 아닐까.

Fig. 8. 강연 끝나고 한컷. (좌에서 우로) 필자, 김동희 박사님, 손민영 학생.

 요즘 파충류에 대한 공부만 하다보니 절지동물의 아름다움을 너무 잊고 지낸듯 싶다. 재밌는 강연이었다. 아, 그리고 이번 행사에서 오랜만에 연세대 손민영 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Fig. 8). 손민영 학생과는 작년 몽골공룡탐사를 함께 다녀온 경험이 있다. 고생물, 특히 익룡에 관심이 많은 학생인데.. 훗날 한국의 마크 위턴(Mark Witton)이 될 꺼라 믿는다. (우선 군대부터 다녀오고..)

 한마디만 더하자면, 강연 뒷풀이를 박물관 앞에 위치한 『맛보치킨』에서 했는데, 그곳 생맥주가 정말 맛있다. 그 맛이 궁금하신 분들은 꼭 가시길.


[참고문헌]

Baldwin, C. T. 1977. Rusophycus morgati: an asaphid produced trace fossil from the Cambro-Ordovician of Brittany and Northwest Spain. Journal of Paleontology 51: 411–425.

Briggs, D. E. G., Rolfe, W. D. I. and Brannan, J. 1979. A giant myriapod trail from the Namurian of Arran, Scotland. Palaeontology 22: 273–291.

Dawson, J. W. 1862. Notice of the discovery of additional remains of land animals in the Coal-Measures of the South Joggins, Nova Scotia. Quarterly Journal of the Geological Society of London 18: 5–7.

Garlock, T. L. and Isaacson, P. E. 1977. An occurrence of a Cruziana population in the Moyer Ridge Member of the Bloomsberg Formation (Late Silurian)-Snyder County, Pennsylvania. Journal of Paleontology 51 (2): 282–287.

댓글 2개:

  1. 와우 진영아, 나도 오파비니아 씨리즈를 좋아해!

    개인적으로는 생명 최초의 30억 년,대멸종과 공룡 오디세이를
    소장하고 있는데...갑자기 졸음이 오네

    아무튼, 좋은 강의였던거 같은데 나도 같이 들어볼껄 하는 생각도 들어.
    다음에 또 좋은 강의가 있어 가려고 한다면 나에게도 얘기해주길 바란다!

    그나저나 저 루소피쿠스라는 화석은 처음 보는데,
    삼엽충 생활사에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좋은 화석인것 같다.
    민영이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그럼, 맛보에서 만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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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래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박물관뉴스 게시판에 들어가시면 앞으로의 강연 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namu.sdm.go.kr/Sub05/?Order=05_01_01

      6월초에는 이항재연구원님의 『대멸종』강연이 있을 겁니다^^
      그때 형도 함께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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