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 1. 책『파충류처럼 냉정하고 포유류처럼 긍정하라(2007)』의 표지. (From: www.amazon.com) |
필자의 책장에는 『파충류처럼 냉정하고 포유류처럼 긍정하라(The Nature of Leadership, 2007)』라는 제목의 자기개발서가 꽂혀있다(Fig. 1). 이 책에서는 어떠한 문제에 대한 상황판단 시, "냉혈동물인 파충류처럼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어떠한 판단을 할 때에는 개관적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정말 이 책의 표현처럼 파충류는 "냉혈동물"일까?
Fig. 2. 동면중인 미국흑곰(Ursus americanus). 체온을 내적으로 조절하는 내온성 동물이지만, 동면기에는 체온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변온성 동물이기도 하다. ⓒ North American Bear Center |
책의 내용을 떠나서, 일반적으로 냉정한 사람을 "냉혈동물"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냉혈동물"이란 개념은 잘못된 것이다. "냉혈성(cold-blooded)"은 체온이 외부환경에 의해 오르락 내리락하는 체온 체계를 의미하는데, 외부의 기온이 높은 곳에서는 체온 또한 높게 상승하기 때문에 '차가운 피'를 뜻하는 "냉혈(冷血)"이란 단어은 잘못되었다 할수 있다. 정확한 표현은 변온성(Poikilotherm). 이와 반대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체온 체계를 항온성(Homeotherm)이라 한다("온혈성"은 잘못된 표현). 더 나아가, 동물의 체온 체계는 체온이 조절되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 내부의 열원을 통해 체온조절을 하는 내온성(Endothermic), 그리고 외부의 열원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는 외온성(Ectothermic)이 존재한다(Sampson, 2009). 즉, 소화를 통해 열에너지를 생산하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우리 인간(Homo sapiens)은 내온성임과 동시에 항온성이다. 반면, 같은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동면(冬眠)을 하는 미국흑곰(Ursus americanus)은 체온을 내적으로 조절하지만, 동면을 하는 동안 체온에 큰 변화가 있으므로 내온성임과 동시에 변온성이다(Fig. 2).
Fig. 3. 포유류 몸체의 질량에 따른 신진대사율의 변화. 체구가 작은 동물일수록 열손실이 쉬우며, 손실된 열을 보안하기 위해 신진대사가 촉진될 수 밖에 없다. (From: dspace.jorum.ac.uk) |
체온 체계는 몸체의 크기와도 연관성이 크다. 덩치가 작은 동물들은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크다보니 체내의 열을 빠른 속도로 잃는다. 반면, 몸집이 거대한 동물들은 몸의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작다보니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에 있어서 더욱 유리하다. 따뜻한 물이 담겨있는 머그잔과 욕조를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작은 동물은 체내의 열을 빨리 잃기 때문에 손실된 에너지를 빠른속도로 보안해줘야만 한다. 그래서 작은 동물들은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인 형태를 보이며, 더 나아가 온몸이 털로 덮히거나 몸을 떠는 행위를 보인다(Sampson, 2009). 이와 반대로 몸집이 큰 동물들은 열을 발산할 표면적이 적다보니 몸이 과열될 수도 있다는 단점을 지닌다. 그래서 일부 대형동물들은 몸의 표면적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넓은 귀면적을 가진 아프리카코끼리(Loxodonta africana)이다.
Fig. 4. 장수거북(Dermochelys coriacea)은 외온성임과 동시에 변온성이지만, 큰 몸집과 상대적으로 적은 표면적 때문에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는 항온성 특징을 보인다. (From: www.wired.com) |
기본적으로 변온성이지만 거대해진 몸집 때문에 본의 아니게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큰 몸집 덕에 체온을 유지하는 것을 거대항온성(Gigantothermy)이라 하는데(Sampson, 2009), 대표적인 것이 장수거북(Dermochelys coriacea)이다(Fig. 4). 앞지느러미의 길이만 해도 최대 2.7 m까지 성장할 수 있는 장수거북은 지상최대의 파충류 중 하나이다. 본래 장수거북의 새끼는 외부로부터 체온을 조절하는 외온성, 체온의 변화가 있는 변온성이지만, 거대한 성체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몸체의 표면적이 작아지게되어 항온성의 특징을 보이게 된다.
Fig. 5. 열카메라를 통해 촬영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갈라파고스바다이구아나 (Amblyrhynchus cristatus). 몸집이 작은 변온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열원에 의해 높은 체온을 보이고 있다. (From: www.panoramio.com) |
그렇다면 몸집이 작은 외온성+변온성 동물들은 어떨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냉혈동물", 즉 일반적인 파충류들이 바로 이런 체온 체계에 속한다. (ex. 도마뱀, 뱀) 이들은 내부의 열원으로부터 열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내온성 동물보다 표면적 크기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Sampson, 2009). 이는 손실된 열에너지를 내온성 동물만큼 빠른 속도로 보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집이 작은 외온성+변온성 동물들은 몸체의 표면적을 많이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더 나아가 이들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직접 받거나, 햇빛에 달궈진 암석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체온 체계는 적당한 시간과 장소가 주어지면 항온성 동물보다 더 높게 체온을 상승시킬 수가 있는데, 일광욕시 체온을 4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바다이구아나(Amblyrhynchus cristatus)가 대표적이다(Fig. 5). 결국, 우리들이 흔히 알고있는 "냉혈동물"은 (상황에 따라) "냉혈"이 아닌 것이다.
Fig. 6. 아메리카엘리게이터(Alligator mississippiensis)의 밝은 미소. |
"냉혈동물"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 이것이 필자가 오늘 전달하고픈 말이다. 이러한 말표현 때문에 많은 동물들의 이미지가 왜곡되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시간이 된다면 애완용 뱀의 체온을 느껴보기 바란다. (차가운 곳에 있지만 않았다면) 뱀이 차갑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일반인들에게도 뱀의 눈빛과 악어의 미소(Fig. 6)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Sampson, S. D. 2009. Dinosaur Odyssey: Fossil Threads in the Web of Lif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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